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길을 걷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지렁이가 보도블록이나 아스팔트 위에 올라와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공원 산책로나 화단 주변은 물론이고 흙과 상당히 떨어진 도로 위에서 지렁이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지렁이는 원래 땅속에서 사는데 왜 비만 오면 밖으로 나오는 걸까?”
흔히 비가 오면 땅속에 물이 차서 지렁이가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물에 잠긴 토양의 산소 부족이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지렁이의 행동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젖은 지표면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행동, 빗방울이 만드는 진동에 대한 반응 등 여러 이유가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장마철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오는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지렁이는 어떻게 숨을 쉴까?
지렁이가 비 오는 날 밖으로 나오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렁이가 어떻게 호흡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렁이에게는 사람과 같은 폐가 없습니다.
대신 피부를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피부호흡을 합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피부가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렁이는 건조한 햇볕 아래보다 수분이 충분한 흙 속에서 생활하기에 적합합니다. 토양이 지나치게 건조해지면 지렁이는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거나 활동을 줄여 수분 손실을 막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비가 내리는 날은 오히려 지렁이가 지표면을 돌아다니기에 좋은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땅속 산소가 부족해질 수 있다
흙에는 흙 알갱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흙 사이에는 작은 공간들이 있고 그곳에는 물과 공기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장마철처럼 많은 비가 계속 내리면 흙 사이의 공간에 물이 많이 차게 됩니다.
토양이 지나치게 물에 잠기면 공기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들고 산소 조건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Penn State Extension은 지렁이가 산소가 충분한 물에서는 일정 기간 물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지만, 과도하게 물에 잠긴 토양에서는 산소 부족을 피하기 위해 지표면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장마철에 토양이 완전히 포화되었을 때 지렁이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데에는 산소 부족이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렁이는 물에 빠져서 익사하는 걸까?
여기에서 한 가지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지렁이는 땅속에 물이 들어오면 바로 익사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입니다.
지렁이는 피부를 통해 산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물속에 산소가 충분하다면 일정 기간 물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Scientific American에 소개된 전문가 설명에서도 지렁이가 물속에서 며칠 동안 살아남을 수 있으며, 비가 올 때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행동을 단순한 익사 회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즉, 비가 왔다고 해서 땅속의 모든 지렁이가 당장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토양 상태와 지렁이의 종류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젖은 땅은 지렁이에게 이동하기 좋은 길이 된다
비 오는 날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동입니다.
평소 지렁이가 땅속을 이동하려면 흙을 밀어내거나 기존의 작은 틈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가 내린 뒤 지표면이 충분히 젖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피부가 마를 위험이 적기 때문에 지렁이는 땅속보다 지표면을 이용해 훨씬 빠르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 비 오는 날 지렁이가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주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젖은 지표면은 지렁이에게 일종의 빠른 이동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복잡한 땅속 터널을 파고 이동하는 대신 비가 오는 동안 넓게 열린 도로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렁이는 왜 평소에는 땅 위로 잘 나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동하기 편하다면 평소에도 땅 위로 나오면 되지 않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수분입니다.
지렁이의 피부가 너무 건조해지면 정상적인 피부호흡이 어려워집니다.
특히 햇빛이 강하고 건조한 날에는 지표면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지렁이에게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표면에는 새와 같은 포식자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촉촉한 땅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지표면이 젖어 피부가 마르는 위험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때는 잠시 땅 밖으로 나와 이동하는 것이 지렁이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빗방울의 진동 때문에 올라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 오는 날 지렁이가 나타나는 이유에는 조금 더 흥미로운 가설도 있습니다.
바로 빗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 발생하는 진동입니다.
지렁이는 땅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지렁이의 천적 가운데 하나인 두더지가 땅을 파고 이동할 때도 토양에 진동이 만들어집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빗방울이 지속적으로 토양을 두드릴 때 발생하는 진동이 지렁이에게 포식자가 접근하는 신호와 비슷하게 느껴질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지렁이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지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모든 지렁이가 비의 진동 때문에 밖으로 나온다고 확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류와 환경에 따라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가 오면 지렁이가 짝짓기를 하러 나오는 걸까?
지렁이가 번식을 위해 지표면으로 나온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지렁이는 지표면에서 짝짓기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지렁이 대부분은 암수 생식기관을 모두 가진 자웅동체이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개체와 만나 정자를 교환해 번식합니다.
따라서 습한 날씨가 지렁이의 번식 행동과 관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지렁이 종류 가운데 지표면에서 짝짓기하는 종류는 일부이기 때문에 비가 올 때 수많은 지렁이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현상을 번식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장마철에는 왜 특히 지렁이가 많이 보일까?
일반적인 비 한 번보다 장마철에 지렁이를 자주 발견하는 것은 토양에 수분이 오랫동안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짧은 소나기가 내리면 토양 표면만 잠시 젖었다가 빠르게 마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여러 날 동안 비가 반복되면서 토양 깊은 곳까지 수분이 증가합니다.
토양이 포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지표면 역시 오랫동안 촉촉하게 유지됩니다.
따라서 지렁이가 땅 밖으로 나와 활동하거나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실제로 University of Minnesota Extension도 지렁이가 토양 속에서 생활하면서 비 오는 날, 특히 봄철과 같은 습한 시기에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비가 그친 뒤 아스팔트에서 지렁이가 죽는 이유
비 오는 날에는 살아 움직이던 지렁이가 다음 날 아침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위에서 말라 죽어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비가 그친 뒤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바닥이 촉촉해 지렁이가 이동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비가 멈추고 햇빛이 나오면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합니다.
지렁이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바닥이 말라버리면 피부에서 수분을 잃게 됩니다.
특히 아스팔트는 햇빛을 받으면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에 지렁이에게 더욱 위험한 환경이 됩니다.
결국 비가 오는 동안 이동하다가 흙이 없는 공간까지 나온 지렁이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못해 죽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길 위의 지렁이를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가 그친 뒤 젖은 도로나 보도블록에서 살아 있는 지렁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꼭 구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햇빛이 강하고 지렁이가 흙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면 가까운 흙이나 낙엽이 있는 촉촉한 장소로 옮겨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렁이를 지나치게 잡아당기거나 거칠게 다루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렁이는 부드러운 몸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손상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에 따라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외래 지렁이 종류도 존재하므로 먼 장소로 옮기기보다는 발견한 곳 바로 주변의 흙으로 이동시키는 정도가 적절합니다.
지렁이는 토양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지렁이는 단순히 흙속을 돌아다니는 생물이 아닙니다.
땅속에 굴을 만들면서 토양 구조에 영향을 주고 식물과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여합니다.
지렁이가 만든 통로는 물과 공기가 토양 안으로 이동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지렁이는 유기물과 흙을 먹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토양의 물질 순환에도 영향을 줍니다.
University of Minnesota Extension은 지렁이의 굴이 토양에 자연적인 통기 효과를 만들고 물과 산소가 땅속으로 침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지렁이는 지역 생태계에 따라 유익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며, 원래 지렁이가 없었던 일부 산림 생태계에서는 외래 지렁이가 낙엽층을 빠르게 분해해 생태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장마철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오는 이유 정리
장마철에 지렁이가 땅 위로 올라오는 이유를 단순히 “물이 차서 숨을 못 쉬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토양이 물로 포화되면서 산소 조건이 나빠질 수 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가 내려 지표면이 촉촉해지면 지렁이가 피부를 건조시키지 않고 빠르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토양 진동에 대한 반응이나 종류에 따른 번식 행동 등이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장마철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 현상은 하나의 원인보다는 습도, 토양 산소, 이동, 진동 등 여러 조건이 함께 만들어내는 행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다음에 비가 내린 뒤 길 위에서 지렁이를 발견한다면 단순히 “비를 피해 나온 지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변을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한 비 오는 날이지만 지렁이에게는 평소 움직이기 어려웠던 땅속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